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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손가락의 시/진은영 긴 손가락의 詩/진은영 시를 쓰는 건 내 손가락을 쓰는 일이 머리를 쓰는 일보다 중요하기 때문. 내 손가락, 내 몸에서 가장 멀리 뻗어나와 있다. 나무를 봐. 몸통에서 가장 멀리 있는 가지처럼, 나는 건드린다, 고요한 밤의 숨결, 흘러가는 물소리를, 불타는 다른 나무의 뜨거움을, 모두 다른 것을 가리킨다. 방향을 틀어 제 몸에 대는것은 가지가 아니다. 가장 멀리 있는 가지는 가장 여리다. 잘 부러진다. 가지는 물을 빨아들이지도 못하고 나무를 지탱하지도 않는다. 빗방울 떨어진다. 그래도 나는 쓴다. 내게서 제일 멀리 나와 있다. 손가락 끝에서 시간의 잎들이 피어난다. 진은영 1970년 대전에서 태어났으며, 이화여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2000년 계간 〈문학과사회〉 봄호에 「커다란 창고가 있는 집」 외 3편.. 2024. 4. 18.
풍산국민학교/안도현 풍산국민학교/안도현 고 계집애 덧니 난 고 계집애랑 나랑 살았으면 하고 생각했었다 1학년 때부터 5학년 때까지 목조건물 삐걱이는 풍금 소리에 감겨 자주 울던 아이들 장래에 대통령 되고 싶어하던 그 아이들은 키가 자랄수록 젖은 나무 그늘을 찾아다니며 앉아 놀았지만 교실 앞 해바라기들은 가을이 되면 저마다 하나씩의 태양을 품고 불타올랐다 운동장 중간에 일본놈이 심어놓고 갔다는 성적표만한 낙엽들을 내뱉던 플라타너스 세 그루 청소 시간이면 나는 자주 나뭇잎 뒷면으로 도망가 숨어 있었다 매일 밤마다 밀린 숙제가 잠 끝까지 따라 들어오곤 하였다 붉은 리트머스 종이 위로 가을이 한창 물들어갈 무렵 내 소풍날은 김밥이 터지고 운동회날은 물통이 새고 그래 그날 주먹 같은 모래주머니 마구 던져대던 폭죽 터뜨리기 아아 그때.. 2024. 4. 17.
심장이 아프다/김남조 심장이 아프다/김남조 “내가 아프다”고 심장이 말했으나 고요가 성숙되지 못해 그 음성 아슴했다 한참 후일에 “내가 아프다 아주 많이”라고 심장이 말할 때 고요가 성숙되었기에 이를 알아들었다 심장이 말한다 교향곡의 음표들처럼 한 곡의 장중한 음악 안에 심장은 화살에 꿰뚫린 아픔으로 녹아들어 저마다의 음계와 음색이 된다고 그러나 심연의 연주여서 고요해야만 들린다고 심장이 이런 말도 한다 그리움과 회한과 궁핍과 고통 등이 사람의 일상이며 이것이 바수어져 물 되고 증류수 되기까지 아프고 아프면서 삶의 예물로 바쳐진다고 그리고 삶은 진실로 이만한 가치라고 김남조 『심장이 아프다』 문학수첩, 2013. #심장에게귀기울이는계절 #아프니까청춘인가 #외로우니까사람이다 2024. 4. 16.
캘리 필사하기 좋은 짧은 글 캘리 필사하기 좋은 짧은 글 1. 당신은 누구보다 소중한 사람입니다 2. 언제나 내 편이 되어줘서 고마워요 3. 선물 같은 오늘을 살아요 4. 오늘이 꽃처럼 예쁜 날이기를 5. 설렘이라는 소중한 선물 6. 함께해서 설레는 순간 7. 항상 널 위해 기도하는 내가 있어 8. 생각은 신중하게 행동은 빠르게 9. 당신의 오늘은 맑음이길 10. 언제나 곁에서 힘이 될게요 11. 사랑 한가득 담아서 너에게 선물할래 12. 너를 닮은 다정한 봄이 성큼 13. 봄은 어느새 우리 곁으로 14. 함께 있으면 좋은 사람 15. 덕분에 내 마음은 언제나 맑음 16. 이유 있는 하루를 살자 17. 소중한 것은 언제나 가까이 있다 18. 행복은 늘 슬픔 뒤에 숨어있다. 19.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더 많은 별을 볼 수 있다 2.. 2024. 4. 12.
수선화에게/정호승 수선화에게/정호승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검은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어서 울려퍼진다 2024. 4. 12.
혼자의 넓이/이문재 -21년 정지용문학상 혼자의 넓이/이문재 해가 뜨면 나무가 자기 그늘로 서쪽 끝에서 동쪽 끝으로 종일 반원을 그리듯이 혼자도 자기 넓이를 가늠하곤 한다 해 질 무렵이면 나무가 제 그늘을 낮게 깔려오는 어둠의 맨 앞에 갖다놓듯이 그리하여 밤새 어둠과 하나가 되듯이 우리 혼자도 서편 하늘이 붉어질 때면 누군가의 안쪽으로 스며들고 싶어한다 너무 어두우면 어둠이 집을 찾지 못할까 싶어 밤새도록 외등을 켜놓기도 한다 어떤 날은 어둠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유리창을 열고 달빛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 그러다가 혼자는 자기 영토를 벗어나기도 한다 혼자가 혼자를 잃어버린 가설무대 같은 밤이 지나면 우리 혼자는 밖으로 나가 어둠의 가장자리에서 제 그림자를 찾아오는 키 큰 나무를 바라보곤 한다 올해의 “지용”을 뽑는 자리에 왔으니 관주(貫珠)하기 어.. 2024. 4.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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