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전체 글23 가재미/문태준 가재미/문태준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투병 중인 그녀가 누워 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낸다.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옮아 붙은 야윈 그녀가 운다. 그녀는 죽음만을 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온 파랑 같은 날들을 보고 있다. 좌우를 흔들며 살던 그녀의 물 속 삶을 나는 떠올린다. 그녀의 오솔길이며 그 길에 돋아나던 대낮의 뻐꾸기 소리며 가늘은 국수를 삶던 저녁이며 흙담조차 없었던 그녀 누대의 가계를 떠올린다. 두 다리는 서서히 멀어져 가랑이지고 폭설을 견디지 못하는 나뭇가지처럼 등뼈가 구부정해지던 그 겨울 어느 날을 생각한다. 그녀의 숨.. 2024. 4. 2. 봄길 / 정호승 봄길 /정호승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있는 사람이 있다 모순같은 진리가 파장을 일으킨다 봄길은 희망이다 이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은 봄길 2024. 3. 29. 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황지우 너를 기다리는 동안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 2024. 3. 29. 봄낚시/염혜원 봄낚시 더디 오는 봄을 낚으려 겨울에게 미끼를 던졌습니다 염혜원 24년 1월 14일 촬영 2024. 2. 17. 낙엽칩/염혜원 낙엽칩 황금색 가을 오일로 가랑잎을 바삭하게 튀겨 놓았다 짭조름한 사랑 뿌려놓은 맛있는 가을을 바스락바스락 걷는다 염혜원 2024. 2. 7. 이전 1 2 3 4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