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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2

풍산국민학교/안도현 풍산국민학교/안도현 고 계집애 덧니 난 고 계집애랑 나랑 살았으면 하고 생각했었다 1학년 때부터 5학년 때까지 목조건물 삐걱이는 풍금 소리에 감겨 자주 울던 아이들 장래에 대통령 되고 싶어하던 그 아이들은 키가 자랄수록 젖은 나무 그늘을 찾아다니며 앉아 놀았지만 교실 앞 해바라기들은 가을이 되면 저마다 하나씩의 태양을 품고 불타올랐다 운동장 중간에 일본놈이 심어놓고 갔다는 성적표만한 낙엽들을 내뱉던 플라타너스 세 그루 청소 시간이면 나는 자주 나뭇잎 뒷면으로 도망가 숨어 있었다 매일 밤마다 밀린 숙제가 잠 끝까지 따라 들어오곤 하였다 붉은 리트머스 종이 위로 가을이 한창 물들어갈 무렵 내 소풍날은 김밥이 터지고 운동회날은 물통이 새고 그래 그날 주먹 같은 모래주머니 마구 던져대던 폭죽 터뜨리기 아아 그때.. 2024. 4. 17.
반쯤 깨진 연탄/안도현 반쯤 깨진 연탄/안도현 언젠가는 나도 활활 타오르고 싶은 것이다 나를 끝 닿는데 까지 한번 밀어붙여 보고 싶은 것이다 타고 왔던 트럭에 실려 다시 돌아가면 연탄, 처음으로 붙여진 나의 이름도 으깨어져 나의 존재도 까마득히 뭉개질 터이니 죽어도 여기서 찬란한 끝장을 한번 보고 싶은 것이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뜨거운 밑불위에 지금은 인정머리없이 차가운, 갈라진 내 몸을 얹고 아랫쪽부터 불이 건너와 옮겨 붙기를 시간의 바통을 내가 넘겨 받는 순간이 오기를 그리하여 서서히 온몸이 벌겋게 달아 오르기를 나도 느껴보고 싶은 것이다 나도 보고 싶은 것이다 모두들 잠든 깊은 밤에 눈에 빨갛게 불을 켜고 구들장 속이 얼마나 침침하니 손을 뻗어 보고 싶은 것이다 나로 하여 푸근한 잠 자는 처녀의 등허리를 밤새도록 슬금슬금.. 2024. 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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