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성기를 노래하고 싶다/이승하
볼품없이 누워 계신 아버지
차갑고 반응이 없는 손
눈은 응시하지 않는다
입은 말하지 않는다
오줌의 배출을 대신해주는 도뇨관(導尿管)과
코에서부터 늘어져 있는
음식 튜브를 떼어버린다면?
항문과 그 부근을
물휴지로 닦은 뒤
더러워진 기저귀 속에 넣어 곱게 접어
침대 밑 쓰레기통에 버린다
더럽지 않다 더럽지 않다고 다짐하며
한쪽 다리를 젖히자
눈앞에 확 드러나는
아버지의 치모와 성기
물수건으로 아버지의 몸을 닦기 시작한다
엉덩이를, 사타구니를, 허벅지를 닦는다
간호사의 찡그린 얼굴을 떠올리며
팔에다 힘을 준다
손등에 스치는 성기의 끄트머리
진저리를 치며 동작을 멈춘다
잠시, 주름져 늘어져 있는 그것을 본다
내 목숨이 여기서 출발하였으니
이제는 아버지의 성기를 노래하고 싶다
활화산의 힘으로 발기하여
세상에 씨를 뿌린 뭇 남성의 상징을
이제는 내가 노래해야겠다
우리는 모두 이것의 힘으로부터 왔다
지금은 주름져 축 늘어져 있는
아무런 반응이 없는 하나의 물건
나는 물수건을 다시 짜 와서
아버지의 마른 하체를 닦기 시작한다
이승하 시인
경북 의성에서 태어나 김천에서 성장했다.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동 대학원 졸업.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소설로 당선했다. 시집 《사랑의 탐구》, 《우리들의 유토피아》, 《생명에서 물건으로》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냈다.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문학평론집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 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등을 출간했다.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많이 써야 해요. 시를 10편 쓰면 그런대로 괜찮은 게 나와요. 한 편을 고치고 다시 고치기보다는 미친 듯이 많이 쓰는 게 좋아요. 그럴 때 뭐랄까요. 우주의 기운(?)이나 기분, 주제나 소재 등이 잘 들어맞아서 좋은 작품이 나와요.”
-신춘문예 당선하려면 과거 당선작이나 심사위원 성향 연구해서 써야 한다고들 하잖아요.
“거기에 함정이 있어요. 제 경험으로는 과거의 작품을 연구해서 마치 인공지능이 쓰듯이 쓴 작품은 최종심에도 안 올라갔어요. 그냥 마음 내키는 대로 쓴 게 된 거죠(웃음). 신춘문예 당선자는 보통 한 해에 7, 8명이 나오는데, 살아남은 사람은 한두 명밖에 없어요. 개성 확보가 중요해요. 신춘문예는 거꾸러지지 않고 계속 쓸 실력을 탐색하는데, 결국은 자기 목소리가 중요하지요.”
신춘문예 2관왕인 그의 ‘당선 비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남의 것 흉내 내지 말고 무조건 많이 쓰라. 그래도 문학인들에게 도움이 될 법한 힌트가 아닌가. 어쨌든 그 얘기는 좀 딴 길로 샌 것이고, 다시 에르바르트 뭉크의 그림을 통해 1980년대 한국 현실과 개인사를 투영한 그의 시 얘기를 이어 나갔다. “저는 십 대 시절 가출도 여러 번 했고, 집에 있는 약이란 약을 다 쓸어 먹고 실명 위기까지 간 적이 있어요. 바닥까지 내려가 봤죠. 저의 집은 학교 앞에서 문구점을 했어요. 햇빛 한 점 들지 않는 깜깜한 지하실에서 생활했고요. 부모님은 자주 심하게 다투셨어요. 단순한 말다툼이 아닌, 아버지가 폭력을 썼어요. 양친 모두 돌아가셔서 이제는 다 용서하고 화해했다고 생각하다가도 문득문득 떠올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