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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 이야기/황정희

by callistar 2024. 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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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 이야기/황정희

둘째 가졌을 무렵입니다 하루는 장 보러 나갔다가 왜 그리 칼국수가 먹고 싶던지요 층층시하 먹고 싶은 것 따로 챙길 여유 없던 시절 난데없는 칼국수 생각 참 난감했습니다 배 속 아이는 여전히 칭얼대고 좁은 시장통에 서서 한참 머뭇거리다 칼국숫집을 찾아 들어갔습니다 바지락 칼국수 한 그릇 시켰습니다 배 속 아이는 얌전히 기다리고 문밖 소음도 저만큼 물러났습니다 무심코 앉았는데 주방에서 호박 써는 소리 마늘 다지는 소리 냄비 뚜껑 여닫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 누군가 내 밥상을 차리고 있었습니다 문득 몇 해 동안 한 번도 밥상을 받아보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삼시 세끼 새로 지은 밥에 국에 나물에 밥상을 차려 내면서도 나는 늘 귀퉁이에서 허겁지겁 끼니를 때우는 밥 하는 여자였습니다 갑자기 내 안에 누군가 비죽비죽 울기 시작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습니다 곧 바지락 칼국수 한 상이 차려져 나왔지만 내 눈에는 눈물이 그득 차 밥상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슬며시 몸을 틀어 주방을 등지고 앉아 하나씩 바지락을 건져냈습니다 그 자리에 눈물이 텀벙텀벙 뛰어들었습니다 오후 햇살이 흔들리는 등을 붙잡아주었습니다 그때 내게 밥상을 차려준 아주머니가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면서 볼륨을 올렸습니다 어쩌면 콧물까지 빠뜨릴 뻔했지만 텔레비전 소리가 콧물 훌쩍이는 소리까지 묻어주었습니다 퉁퉁 불은 칼국수를 먹고 또 먹었습니다 다 먹도록 텔레비전은 시끌시끌 돌아가고 출입문도 열리지 않았습니다

「북향 사과」, 천년의시작, 2021.
2022년 송수권문학상 

 

*마음의 울림이 멈추질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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